살다보니 강은학이 운전하는 차를 타는 날도 오는구나. 윤의 머릿속에 있던 은학은 자신의 뒤를 따라다니던 작은 초등학생일 때가 가장 선명했다. 그러니 지금 운전석에 앉아 차를 모는 저 커다란 남자가 낯설기 짝이 없었다. 운전을 하는 건지, 카 오디오에서 나오는 클래식을 연주하는 건지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몸뚱이가 영 못 미덥긴 했으나 위태로움 없이 잘...
공연장에 입장하기 전에 밥부터 먹자는 의견에 따라 일행 모두가 근처 식당에 자릴 잡았다. 분위기는 영 좋지 않았다. 이유는 그 와중에 밥 잘 먹는 강은학과, 그와 마주 앉아 서릿발을 날리고 있는 하윤 때문이었다. 선배님 아까부터 한 숟가락도 안 뜨고 계신데 괜찮으신 걸까. 원래 윤이 선배, 수틀리면 식사 잘 안 하시는 편이래. 근데 저 두 사람 원래 아는 ...
윤이 숨을 돌리러 나오며 마주친 유진은 도망치듯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뭔가 또 죄 지은 게 있네, 있어. 윤이 유진을 생각하며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귀한 쉬는 시간 내내 자판기 음료를 골랐다. 아주 신중하게 두 종류. 여전히 탄산음료와 과일 맛 음료 사이에서의 갈등이었다. 결국 양 손에 하나씩 마실 걸 들고 온 길로 돌아가려 몸을 돌렸는데 때마침...
은학은 생각보다 열심히 레슨에 임하는 윤의 모습이 기쁘기도 했고 한 편으론 낯설었다. 첫 레슨의 쇼팽 프렐류드에 이어 그가 두 번째로 가르칠 곡을 한참 고르다가 마땅한 게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좀 더 고민해보겠다고 했을 땐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형이 아무거나 가르쳐줘도 다 잘 배울 거라고 다짐했던 은학은, 저가 윤을 너무 띄엄띄엄 본 것 같아 마음속으로 반...
윤은 느지막이 오후가 되어서야 간신히 몸을 추슬렀다. 엄마께서 챙겨주신 콩나물국을 떠먹으며 속을 달래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아있는 은학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다시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아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왜 더 안 먹어?” “너 보기 싫어서.” “앗. 그럼 나 연습실 들어가 있을게! 형은 천천히 먹고 올라와.” 아 너무 얄밉다. 정말 미칠 것 같다. 윤...
윤은 강의를 마치자마자 연습실에 있는 은학을 챙겨야만 했다. 아니꼽단 이유로 저녁 식사 자리에 나가지 않는다면 승철에게 또 한 소리를 들을 게 분명했다. 그냥 불편하더라도 밥 한 끼나 같이 하고 마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야 몸도 마음도 편해질 것 같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찾아온 식당은 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었다. 먼저 도착해서 주문을 해 놓은 승철이 딱 ...
윤은 연습실 창문을 통해 바깥 상황을 살폈다. 문 앞에 멀대 같이 서 있던 은학이 사라진 것을 완벽하게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문을 열고 고개만 내밀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완벽히 없어진 걸 확인하곤 한숨을 푹 쉬었다. 다시 피아노 앞으로 들어와 앉아서는 애꿎은 건반 하나만 꾹꾹 눌러댔다. 마음이 홀가분하기도 하고 또 찜찜하기도 했다. 윤도 자신의 행동...
윤의 비공식 연주 영상을 두어 개 쯤 공유 했을 즈음에야 두 사람의 통성명이 시작됐다. 은학이 먼저 자신의 소개를 마친 다음에 유진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이유진. 봤다시피 한국예대 피아노과 학생이고 겪었다시피 하윤 선배의 엄청난 팬이며 강은학 너랑 동갑이니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라는 당당함 뒤에 따라붙은 악수에 은학이 미소 지었다. 맞잡은 두 손엔 약간...
오전 전공 강의를 듣기 위해 학교에 도착한 윤이 정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강은학이 확실해서 속에서부터 울화통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좋게 좀 끝내고 싶었는데 대체 이 질긴 연이 어디까지 갈 건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휴대폰 화면과 주변을 번갈아 보다가 윤을 발견한 은학이 반갑게 휘휘 손을 흔들며 성큼성큼 다가왔...
사람이 사는 생은 그 사람이 주인공인 드라마다. 윤이 어딘가에서 들었던 그 말이 현실이라면, 은학의 드라마는 보는 사람들이 느끼기엔 너무나도 불친절하고 무계획적인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콩쿠르가 끝난 그 다음 주에 있던 은학의 콩쿠르가 끝이 났다. 당연하게도 은학이 쉽게 우승을 차지했다. 분명 그럴 것이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그게 사실이 되니 어...
승철이 부쩍 은학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초등부 콩쿠르 준비 때문인 것도 있지만 콩쿠르 참가 곡은 이제 눈 감고도 칠 수 있다며 다른 곡의 연습을 보챘던 은학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던 것이 시발점이었다.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상당히 뛰어난 재능일 줄은 예상치 못했었다. 가르치는 재미가 있어서 데리고 있게 되었다는 예전의 윤의 말에...
승철은 은학의 재능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옆집 형에게 재미삼아 배우던 단계가 아니게 되었으니 맨 먼저 승철이 한 일은 은학의 보호자를 만나는 일이었다. 그동안 은학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도 아는 것이 없던 윤도 그 상황이 돼서야 아버지를 통해 은학이 자라온 환경을 알 수 있었다. 2년 전에 불의의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일가친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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