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화가 말한 고양이의 의미를 제대로 알 리가 없던 은학은 갑작스럽게 등판한 고양이가 무엇이냐 되물었다. 윤이 온갖 몸부림을 쳐 가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수습하고자 부단히 노력했지만 그 상황이 즐거웠던 경화로 인해 이미 모든 것이 만 천하게 까발려지고 말았다. 순간, 은학의 입 꼬리가 미묘하게 씰룩거리는 것을 보았다. 윤만 보았다.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는 저...
윤이 어색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던 그 집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 풀 발라놓은 것처럼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 강은학을 떼어 놓고 오는 데에 온 진을 다 쏟았다. 간만에 푹 자고 기분 괜찮았는데 결국 남아있는 힘이 없었다. 그렇게 잠깐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었는데 막 눈을 좀 감아볼까- 하려던 찰나에 방 문이 열리며 아까 떼어놓은 껌딱지...
조금 더 자다가 깨어난 윤은 약간 언짢은 듯 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이 언제부턴가, 은학이 하는 말은 곧이곧대로 듣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주방을 다 치우고 반 쯤 등 떠밀려 다시 침실로 들어온 것도 그렇고 어느 새 이불을 덮고 다시 잠을 청한 것도 그렇고. 심지어 알람을 맞추지 않고 양껏 자기까지 했다. 얼마만의 숙면인지 이젠 기억조차 나지 ...
급격하게 어색해진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것은 비단 하윤 뿐만이 아니었다. 은학도 어째 좀 불편한 듯 보였다. 이리저리 눈동자만 굴리다가 몇 번 목을 가다듬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로 잠시 피신하는 듯 싶다가 숨을 돌리고 나와서 다시 윤의 옆자리에 앉았다. 다 먹은 것 같아 보이는 접시들을 들고 일어나 싱크대에 담가놓고 다시 그 자리에 앉고, 설거지...
은학이 한국에 도착했다. 새해를 딱 이틀 앞 둔 날이었다. 커다란 캐리어를 밀면서 입국장에 등장한 은학이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휴대폰을 보느라 정신없는 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형아!” “악!” “뭘 그렇게 놀라? 뭐하고 있었는데? 엇! 나다!” 생각보다 공항에 빨리 도착한 윤이 시간을 보내며 보고 있던 것은 은학의 오케스트라 협연 연주 영상이었다. 날...
“안녕 형아-.” “어.” “짜잔! 이것 봐. 여기도 크리스마스 마켓이야. 여기는 어제 본 데 보다 마켓들은 적지만, 좀 더 귀여운 것들이 많아.” “……어 그래. 알겠어. 이제 잠 좀 자자.” 왜 내가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궁금하다고 했을까. 왜 그딴 실언을 해서 온 독일에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들을 다 보고 있는 걸까. 윤이 제 입술을 꽉 씹으며 과거...
방학을 알차게 연습으로 시간을 보내는 윤에게 최근 약간의 즐거움이 생겼다. 연주회를 위해 유럽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는 은학이 보내오는 사진들을 보는 게 은근 재미있단 것이었다. 물론 직접 보는 것만은 못하지만 연습실에 콕 박혀 피아노와 함께 하는 시간 외에 거의 바깥출입이 없는 윤에게 그만한 대리만족이 없었다. 은학은 부다페스트를 시작으로 다양한 나라들...
멋없게 말하고 싶지 않다던 은학이 쏘아올린 엄청나게 커다란 공은 그대로 윤의 정수리에 꽂혀버렸다. 같잖은 해명이라도 하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욕이나 한 다음에 넘어갈 생각이었다. 근데 갑자기 고백이라니. “아. 맞다. 나 너무 늦었다. 이제 들어가봐야 해. 안녕 형아- 잘 자, 좋은 꿈꾸고!” 그러고 나서는 잘 자라는 인사만 남기고 태연하게 영상 통화를 끊...
뭣 같은 보답 뽀뽀가 스쳐가길 꼭 사흘 째였다. 윤은 사흘 내내 잡스러운 생각이 많아 잠을 자지 못했다. 그런데 더 열 받는 건, 그렇게 기습 뽀뽀를 날린 놈은 그 사흘 동안 연락 한 번 없단 것이었다. 헝가리에 도착해서 시차도 있을 테니 첫째 날은 그렇다고 쳤다. 둘째 날은 에이전시 사람들 만나고 이것저것 준비를 한다 그랬으니 또 그렇다고 쳤다. 그럼 오...
윤은 연주회 당일이 되어도 딱히 긴장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간 나갔던 콩쿠르 경험도 있는데 설마- 했는데 막상 상황이 닥쳐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먼저 회장에 도착해 리허설도 하고 이미지 트레이닝도 했지만 딱히 안정이 된다거나 기분이 풀리지도 않았다. 함께 무대에 오르는 다른 학생들은 주최 측에서 준비해준 간식을 먹느라 제각각 바빴지만 윤은 좀처럼...
집에까지 걸어오는 길이 참 어색했다. 은학은 아직도 두근거림이 가라앉지 않는 심장을 부여잡느라 혼자 힘들어했고, 윤은 몇 초에 한 번 꼴로 살살 숨을 고르는 은학이 거슬렸다. 숨소리 거슬리니까 그만하라고! 소리를 치려다가 슬쩍 들여다본 은학의 얼굴이 미묘하게 상기되어있는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왠지 말을 걸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괜...
은학이 극구 괜찮다 이야기했지만 윤은 그 사태를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억지로 은학의 손에 다른 바지를 쥐어주었다. 자신이 입을 땐 알맞던 트레이닝 바지가 은학에게 돌아가니 짤막해지는 기현상을 겪었지만 애써 모른 척 했다. 기동성이 한 층 좋아진 은학이 가벼운 걸음으로 언덕길을 폴짝폴짝 걸어 내려갔다. 감자탕 찜닭에 이어 오늘은 그 앞 옆 집의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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