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학은 자신의 공연을 준비하는 내내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리허설을 할 때에도 평소에는 하지 않을 잔 실수가 많아 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래서 어떻게 저녁 공연을 할 거냐며 발을 구르는 크리스에게 미안하단 말을 열 번 쯤 하고 곧장 휴대폰을 확인했다. 아직까지도 윤에게 온 연락이 없었다. 불안했지만 먼저 연락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 그래야 ...
아쉬움과 설렘이 공존했던 헤어짐을 끝에 두 사람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윤은 이스탄불 공항에서 경유 비행기를 기다리며 은학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침대 위에서도 한참 발버둥을 치다가 늦게 잠 든 은학에게 답장은 끝내 받을 순 없었지만, 그러려니 넘어갔다. 그리곤 한국에 도착해서 휴대폰을 켜기 무섭게 은학의 전화를 받았다. “형아 잘 갔어?” “어어-. ...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엔 윤 혼자가 아니었다. 이렇게 보낼 순 없다며 따라붙은 은학도 한 자릴 차지하고 있었다. 내일이 이런 내일일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루 스물 네 시간으로 따지면 분명 날짜가 바뀌는 ‘내일’은 맞으니 그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택시 안의 공기가 싸늘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은학과 입이 있어도 할...
다음 날 아침 은학보다 먼저 잠에서 깨어난 윤이 소리 없이 탄식했다. 그랬으면 안됐다. 떨려도 술이 없었어야 했다. 내 몸이 알코올 쓰레기라는 걸 그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왜 자꾸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나 자신을 이렇게 안쓰럽게 만들고만 있는 것인가. 은학의 품에 얌전히 안겨 술기운에 패배한 자기 자신을 마구 타박했다. “일어났어?” “아니. 자고 ...
복도 왼쪽의 끝 방에 도달하여 은학이 주머니에 있던 카드 키를 찾아 문을 열었다. 휘황찬란한 고급 숙소에 도착한 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살금살금 한 걸음씩 뻗으며 방을 구경 중인 윤의 뒤를 따르며 은학은 그의 코트부터 받아주었다. “야 너 혼자 있는데 에이전시에서 이렇게 크고 좋은 방을 잡아줘?” “난 괜찮다고 했는데 계약 내용에 따라 신경을 좀 많이 써...
레스토랑에 입장한 두 사람을 보며 민은 결국 그렇게 됐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생이랑 안부 인사나 몇 마디 나누고 자리 비켜줄 생각으로 열심히 밥을 먹은 보람이 있었다. 윤은 손을 꼭 잡고 민의 앞까지 걸어가려는 은학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밥도 안 먹은 이 손아귀 힘은 왜 이렇게 좋은 건지 떨어지질 못했다. 결국 두 사람은 다정히 깍지를 ...
은학은 짧은 사흘간의 휴가동안 민에게 로마 투어 가이드를 받기로 했다. 민이 열심히 설명하면 나름 고개를 끄덕이며 성실하게 반응하곤 있지만 사실 마음은 로마에 없었다. 아직도 연락이 잘 되지 않는 윤이 걱정되어 손에서 휴대폰을 떨어트려 놓질 못하는 수준이었다. 민을 통해서 연락을 부탁해보고 싶었지만 그렇게까지 하기엔 너무 염치가 없는 것 같아 쉽사리 입을 ...
심통 가득한 입술이 튀어나온 윤이 신경질적으로 연습에 몰두했다. 신명나게 울려대는 은학의 영상통화 시도는 한 삼십 분 정도 무시됐다. 잠깐의 전화벨 소강강태에 띵동띵동 열심히 울리는 메시지 알림을 의식하고 있다가 봐준다는 생각으로 내용을 확인했다. 도착한 건 몇 장의 사진과 우는 이모티콘이었다. 윤이 열 받음에 이마를 짚으며 낮게 탄식했다. 사진 속의 여성...
집으로 돌아온 윤은 힘이 쭉 빠져 허탈하게 소파에 푹 기대어 앉았다. 역시 괜히 입 밖으로 꺼냈나 싶었다. 고민은 혼자 하고 혼자 해결했어야 했는데 더 들쑤셔서 오히려 더 위태롭게 무너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좋아하는 게 뭐 별건가? 케이크 먹으면서 이 케이크를 좋아하는 다른 사람을 떠올리는 게 좋아하는 거지.’ 그러고 보니까, 먹을 사람도 없는데 호...
“안녕하세요 선배! 못 뵙던 그 사이에 더 수척해지셨네요! 반가워요!” “……너, 인사가 묘하게 기분 나쁘다?” “저는 눈에 보이는 대로 얘기했을 뿐이에요. 되게 불쌍하게 생겼다구요 선배-.” 윤의 간만의 외출이었다. 피아노 앞에서 멍 때리는 사이에 급작스럽게 전화를 건 유진 덕분이었다. 기별 없이 전화를 건 유진은 해맑게 팩트를 나열하며 윤을 자극했다. ...
윤은 하루가 부족할 정도로 피아노에 매진했다. 독일로 돌아간 은학 역시 마찬가지였다. 약속처럼 정해진 시간에 잠시 통화를 하는 것 외엔 각자의 연습에 모든 시간을 쏟았다. 그러다가 지칠 때 즈음이 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예고 없이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시간대가 맞으면 영상통화로 짤막하게 피드백을 나누었다. 윤은 지금껏 피아노를 공부하며 지금처럼 즐겁...
윤은 은학이 출국하는 날 아침 느지막이 눈을 떴다. 까치집이 된 머리를 벅벅 긁으며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고 있던 은학은 벌써 일찌감치 일어나 1층으로 내려가 있는 것 같았다. 잠이 덜 깨 멍한 상태의 윤은 어제 있었던 일들을 한 번 더 떠올려보았다. 커다란 홀에서 함께 협주곡 연습을 하고 또 만나자는 말을 했었다. 일순간 하얗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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